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트롤로프 (문단 편집) === 주교가 되다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조마가 주교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{{{#fff 1926년 7월 발행된 《모닝캄(''Morning Calm'')》 제188호에 실린 [br] 마크 트롤로프 주교}}}''' || 트롤로프는 이후 1902년 휴가차 영국으로 돌아갔다. 하지만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, 이후 관할사제(Vicar)로서 10여년간 영국에서 사목한다. 그러던 와중 1911년 5월 2일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랜들 토머스 데이비드슨(Randall Thomas Davidson) 대주교는 [[아서 터너]] 주교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[[성공회 한국교구장|조선교구장]]에 트롤로프를 임명했다. 트롤로프는 조선교구장 임명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. >본인은 이 부르심에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. >...(중략)... >또한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, 다만 캔터베리 대주교의 명령 때문입니다. >---- >Trollope, "Letter from the Bishop-Designate," MC, Vol. 22, No. 129 (Jul. 1911), pp. 78-79.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온것이 아니라, 단지 캔터베리 대주교에 순명하여 주교품을 받고 등 떠밀리듯이 조선에 온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